피에르 드 페르마
낮에는 법관, 밤에는 수학자, 여백이 부족하다는 메모 하나로 350년을 남긴 아마추어
페르마의 직업은 툴루즈 지방의회의 법관이었다. 수학은 퇴근 후의 일이었고 논문도 거의 내지 않았다. 그의 결과 대부분은 다른 수학자에게 보낸 편지와 읽던 책의 여백에 남았다. 디오판토스의 『산술』 여백에 적은 한 줄이 특히 유명하다. n이 3 이상일 때 xⁿ + yⁿ = zⁿ 을 만족하는 자연수는 없으며 "놀라운 증명을 찾았으나 여백이 좁아 적지 못한다"는 메모. 이 문장이 350년간 수학자들을 붙잡았고 1995년 앤드루 와일스가 마침내 증명했다.
1654년에는 파스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른 문제를 풀었다. 도박판이 중간에 끝났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두 사람은 이미 이긴 횟수가 아니라 "끝까지 갔다면 각자 이겼을 경우의 수"로 나눠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아직 오지 않은 일을 세어 지금의 몫을 정한 것이다. 확률론은 이 편지들에서 태어났다.
미적분에도 그의 자리가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보다 앞서, 그는 곡선의 최댓값·최솟값을 찾는 방법을 썼다. 극값 근처에서는 함수값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성질에 착안해 f(x + e)와 f(x)를 같다고 놓고 정리한 뒤 e를 0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지금 언어로 하면 f′(x) = 0 을 푸는 것이고, 극값에서 접선이 수평이 되는 그 장면이다. 뉴턴 자신이 자기 방법의 힌트를 페르마에게서 얻었다고 적었다.
주요 업적
- 파스칼과의 서신으로 확률론의 기초를 세움(분배 문제)
- 극값을 찾는 방법을 고안, 미분의 직접적인 선구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남겨 350년간 정수론을 이끎
- 빛이 최소 시간의 경로로 간다는 페르마의 원리를 제시
시험에서는
"최대·최소"라는 말이 보이면 f′(x) = 0 부터 푼다. 다만 f′(x) = 0 은 후보를 찾는 단계일 뿐이므로, 증감표나 양 끝 값까지 확인해야 답이 확정된다.